새봄이 왔네

블로그 이미지
시작하지도 않고 끝나버린 이야기
soldoremi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5)
일상 (11)
업무 (2)
사진글 (0)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

My Link

  • Total
  • Today
  • Yesterday
  1. 2020.04.11
    느슨해진다는 것
  2. 2020.03.03
    같은 꿈을 꾸는 이유
  3. 2016.11.06
    멀리 보이는 건물의 위험한 열기
  4. 2016.11.06
    긴 여름을 건너는 일
  5. 2015.10.01
    내일이 찾아오면
  6. 2015.08.25
    서른 셋의 우리들은
  7. 2015.08.25
    낯선 하루
  8. 2015.01.26
    빙글빙글
  9. 2014.10.20
    편지 - 이성복
  10. 2014.09.18
    주관적인 시간의 속도에 관하여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생활반경이 겹치는 까닭에 이따금 접점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런 때면 너의 이야기를 과거처럼 기다리는 사향쥐가 되어 있곤 했는데 이제는 연락이 와도, 너를 한참을 기다리게 만들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 너와 나는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관계가 되어 버렸고 앞으로도 변동없이 그러할 것이다. 어떤 라벨링을 붙일 필요도 없는 그런. 

and

어떤 중요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엔 나는 그녀를 마주하는 같은 내용의 꿈을 꾼다. 늘 나는 거짓말을 한다. 20대의 내 입장에선 그렇지 않겠지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꿈에서 깬 후 옆에 잠들어 있는 아들을 토닥이며 이게 현실이지 하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는 모든게 어쩔 수 없지만.

and

옥상에 올라가 앉아 본다. 늦은 가을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따뜻한 오늘이다. 이런 때를 위해 가져온 간이 의자. 아래를 내려다 볼 수는 없어 맞은 편을 본다. 마천루라고 부르기엔 좀 아쉬운 건물들이 맥락없이 나열되어 있고, 창은 규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최소한의 관성도 없어 보인다. 이 대목에서 어떤 작가 분은 '빌어먹을 인간들!'이라는 표현을 썼겠지만 나는 아직 인간에 대해 깊게 실망해 본 적이 없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니 열기가 올라온다. 수증기인지 다른 방식의 열에너지의 배출인지 멀리 있는 내가 알 턱이 없다. 그래도 무엇인가 꾸물꾸물 올라오고 있으니 지켜보게 된다. 나와 관계없는 사건의 발생이자 흐름이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겠지 하고 무방비 상태로 바라본다. 한때 문제가 되었던-사실 지금도 문제일지 모르지만-다이옥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것에 위험을 느끼기엔 애초에 지금 나는 옥상에 올라와 있고, 차라리 북한이 사랑하는 핵무기가 어쩌면 서울 중심부에 낙하할 예정인지의 사항을 더 걱정해야 하겠지. 


그러고 보니 어제, 당일 사형 집행이 결정된 사람이 마지막 아침 식사로 고른 것이 민트 아이스크림이라는 글을 읽었다. 인간은 참으로 잔인하다고 느꼈다. 왜 그런 부질없는 선택권만을 남겨 두고 모든 선택권을 빼앗아 가는걸까. 왜 아무 것도 아닌 것만 남겨두면서.

and

우리말의 계절 이름에는 참 예쁜 울림이 있다. 음성학적으로는, 울림 소리가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할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게 적기에는 뭔가 좀 아쉽다. 호사가들이 좋아하는 표현을 사용해 적어보면, 계절이 변하고 시간이 흐르는 일은 우리의 인생을 울리는 수많은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저런 뻔한 표현도 하기 힘드니 수용하기로 한다.


참, 그 중 '여름'의 경우 울림소리로만 구성되어 있다. 다른 계절 이름이 어느 한 곳에 있어서 딱딱한 소리를 내는 구석이 있다면 여름만은 예외다. 그래서 나는 혹서라는 표현 이외에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을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에 괴로워하면서도 여전히 그 계절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물 다섯 이후, 나는 이따금 추위에 괴로워했지만 계절은 늘 내가 사랑하는 여름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마음과 내 정신이 곧 늙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은 달리지 않아도 늘 머리와 마음은 달리고, 땀을 내고, 언젠가 올 가을을 두려워 했다. 십여년을 그렇게 여름의 마음으로 살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가 떠 있는,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긴 줄 알았다. 그래서 무리한 일도 해왔고,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도 괴로운 상태로 지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나 혼자서 긴 여름 안에서 지냈다. 숨돌릴 시간도 없이.


이제야 깨달았지만, 인생이란 일정표에 적혀 있는 무엇인가들을 하나하나 완성하고 난 후 삭제해 나가는 일이 아니다.  그 완성품을 보며 잠시 쉬는 시간도 있어야 하고, 그걸 파는 시간도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 모양을 보며 즐겨야 하는 시간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긴 여름을 건너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보다는 일단 한 번 심호흡을 한 후, 차가운 바람을 맞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게 낫지 않을까. 내 인생에 여름은 바라지 않더라도 몇 번 더 찾아올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제 끝자락을 놓아야 한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확신하던 어린아이의 세상에서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그런 어른의 세상으로 건너 와야 한다.

and

요즘 잠을 많이 줄인 나는, 이 시간까지 깨어 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조금 전까지 캘린더를 들춰보며, 한숨을 쉬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은 생각보다 천천히 가고 있고 나는 이런 저런 계획했던 일들을 하고 있다.

헛된 미망이 이따금 약한 마음에 틈입하곤 하지만

내일이 찾아오면 별거 아닌 하룻밤의 우스운 이야기가 되어버릴거야. 아무렴.


and

서른 셋의 우리들은 아직도 스물 언저리에 놓여 있으면서, 이미 어른이 된 양 굴어야 한다.

하지 않았던 고민을 해야 하고, 그런 고민이 놓여 있고, 고민이 주어진다. 마치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가능하면 휘말리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일도 쉽게 피할 수 없고, 무수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일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and

즐거울 것도 없는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시계열의 연속면에서 움직이는 실체로 존재하다가 6시가 되면 오래된 오이처럼 시들어 버리는 그런 날들만 존재하다가 이따금 새로운 이야기 혹은  낯선 접촉을 하게 되면 이렇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게나 말이야.

내가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곳의 일들과, 무리를 해서 잡을 수 있는 것, 그도 아니고 너무 멀리 있는 것, 아니면 원래는 내 것이었으나 내가 버린 것들과 또는 누군가가 멀리 집어 던진 것들이라는 몇 가지 분류 안에서 내가 가장 제일 먼저 집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니 내가 집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정확히는, 내가 집어 던져 점수를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and

느즈막히 일어나 와이프가 출근하는 것을 본다.

차려 놓은 것들 중 손으로 집을 수 있는 것들만 먹고

본격적인 식사를 잠시 유예한다.


여름부터 즐겨 보던 '청담동 스캔들'은 작년 말에 최종회를 방영했고

학기는 한 바퀴 돌아 유급을 겨우 면한채로 이제 마지막 연차가 된다.

70여일 후면 아빠가 될 것이며 

실은 내일부터 다시 직장인이 되어 있겠다.


이런 생활의 비정상적 종료.


누가 갑자기 재부팅 버튼을 누른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내가 누른게 맞다.

알면서도 답답한건 당연한 일이지.


'나는 정말 미쳤나봐 오늘 밤도 빙빙도는 이 세상'

이 노래 참 좋아하는데, 오늘 밤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 빙빙도니까 어지러워 죽겠네.

술은 마셔도 마셔도 또 마시고 싶어.

자꾸 정신을 놓고 싶은건 왜일까.


허리는 이제 그만 좀 아팠으면 좋겠고

예상 가능한 범주의 마음의 병은 당분간 찾아오지 않았으면 한다.

내 인생 말고도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좀 되니까 이제는. 


긍정의 힘! 같은 말을 싫어하는 나지만

그런 나라도 가끔 절박하게 긍정 에너지로 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어.

and

1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 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2

안녕
오늘 안으로 나는 기억(記憶)을 버릴 거요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요
나는 선생이 될 거요 될 거라고 믿어요 사실, 나는
아무것도 가르칠 게 없소 내가 가르치면 세상이
속아요 창피하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오 결혼할 수 없소
결혼할 거라고 믿어요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 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and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이 전제된 개념이다. 지나가 버린 순간은 현재로서는 다시 겪을 수 없다. 그리고 예외 사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라는 껍데기 안에서 관찰된 시간과 세상일 뿐이어서 이 모든 것이 명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요즘 느껴지는바에 따르면, 시간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매 순간을 지나치던 나는 뒷걸음질 치고 있다. 물론 순간을 되짚어 갈 수는 없기 때문에, 그냥 그 자리에 내 스스로를 내동댕이 치거나, 아니면 현실을 부정하며 어쨌건 이 순간이 과거라고 착각하고 행동하거나, 그저 무책임하게 퇴행하고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현실에 대한 감각을 일부러 무디게 만들었을까. 어째서 처한 입장과 상황들을 왜곡하여 혼자 만들어 놓은 목장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걸까. 

일단 여기에서 걸어나가고 싶다. 누군가가 시에 썼던 것과 같이. 생의 감각을 다시 찾고 싶다. 찾으면 다시 시간을 느껴봐야지. 웃음기 띤 얼굴을 하고 종종걸음으로 살고 싶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