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이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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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계절 이름에는 참 예쁜 울림이 있다. 음성학적으로는, 울림 소리가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할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게 적기에는 뭔가 좀 아쉽다. 호사가들이 좋아하는 표현을 사용해 적어보면, 계절이 변하고 시간이 흐르는 일은 우리의 인생을 울리는 수많은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저런 뻔한 표현도 하기 힘드니 수용하기로 한다.


참, 그 중 '여름'의 경우 울림소리로만 구성되어 있다. 다른 계절 이름이 어느 한 곳에 있어서 딱딱한 소리를 내는 구석이 있다면 여름만은 예외다. 그래서 나는 혹서라는 표현 이외에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을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에 괴로워하면서도 여전히 그 계절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물 다섯 이후, 나는 이따금 추위에 괴로워했지만 계절은 늘 내가 사랑하는 여름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마음과 내 정신이 곧 늙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은 달리지 않아도 늘 머리와 마음은 달리고, 땀을 내고, 언젠가 올 가을을 두려워 했다. 십여년을 그렇게 여름의 마음으로 살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가 떠 있는,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긴 줄 알았다. 그래서 무리한 일도 해왔고,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도 괴로운 상태로 지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나 혼자서 긴 여름 안에서 지냈다. 숨돌릴 시간도 없이.


이제야 깨달았지만, 인생이란 일정표에 적혀 있는 무엇인가들을 하나하나 완성하고 난 후 삭제해 나가는 일이 아니다.  그 완성품을 보며 잠시 쉬는 시간도 있어야 하고, 그걸 파는 시간도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 모양을 보며 즐겨야 하는 시간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긴 여름을 건너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보다는 일단 한 번 심호흡을 한 후, 차가운 바람을 맞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게 낫지 않을까. 내 인생에 여름은 바라지 않더라도 몇 번 더 찾아올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제 끝자락을 놓아야 한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확신하던 어린아이의 세상에서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그런 어른의 세상으로 건너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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